‘선량함’ 앞세워 인권 외교…백악관 나와선 ‘세계 평화’ 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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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01-02 15:03 조회15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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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평화 ‘중재’·김일성과 ‘담판’·부인 로잘린과 ‘해비타트’ 29일(현지시간) 별세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생전 세계 평화와 인권에 헌신한 지도자로 평가받는다. 1979년에는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를 미국으로 초청해 중재를 이끌며 이집트·이스라엘 평화조약을 성사시켰다(왼쪽 사진). 1994년 1차 북핵 위기 당시에는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담판으로 북·미 협상의 물꼬를 텄다(가운데). 또 빈곤층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한 사랑의 집짓기 운동에 동참했는데, 로절린 카터 여사와 함께 작업복을 입고 직접 자재를 자르며 창문을 제작하기도 했다(오른쪽). AP연합뉴스·카터센터·EPA연합뉴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100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퇴임 후 40여년 동안 세계 평화와 인도주의 실현 및 빈곤·질병 퇴치를 위해 헌신한 그는 가장 존경받는 미국 전직 대통령으로 불린다. 재임 시절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에 인권 상황 개선을 압박하며 주한미군 철수를 추진했고, 북핵 위기 해결을 위해 직접 방북하는 등 한반도와도 인연이 깊다.
카터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45분쯤 조지아주의 자택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카터센터가 밝혔다.
지난 10월 100번째 생일을 맞아 역대 최장수 미 대통령 기록을 세운 카터 전 대통령은 오랫동안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 등으로 투병해왔다. 고인은 지난해 2월부터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호스피스 돌봄을 받아오던 중이었으며, 지난 11월에 치러진 미 대선에도 우편투표로 한 표를 행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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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도 각별한 인연이 있다. 대선 후보 시절 박정희 독재정권의 인권 탄압을 문제 삼아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한 그는 취임 후 주한미군 4~5년 내 철군 및 전술핵 철수 계획을 제시했다. 1979년 7월 방한 당시 회담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미군 철군에 강력히 반대하자 한국의 자체 국방비 확충과 긴급조치 9호 해제 등 인권 개선을 요구하며 설전을 벌였다. 한·미 동맹 역사상 최악의 정상회담이자, 양국 관계 긴장이 파국 직전까지 고조됐던 순간이었다. 결국 의회와 군의 반대에 부딪혀 철군 구상은 주한미군 3600명 감축에서 끝났다. 인권 외교를 앞세웠던 카터 행정부는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이 암살된 이후 신군부를 사실상 용인해 논란을 자초했다.
국제분쟁 해결에 열의를 보인 그에겐 북한 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도 중요한 과업이었다. 그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북핵 1차 위기가 고조된 1994년 6월 평양을 찾아 김일성 주석과 두 차례 면담하고, 북한의 핵개발 동결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특별사찰 수용을 이끌어냈다. 대북제재·압박을 강화하던 빌 클린턴 당시 미 행정부 기조에서 다소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왔지만,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은 북·미 고위급 대화와 그해 10월 제네바합의 체결로 이어졌다.
특히 그가 김 주석에게 김영삼 당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제안해 1994년 7월 말 남북이 분단 이후 첫 남북 정상회담을 갖기로 하면서 화해 무드가 조성됐다. 하지만 7월8일 김 주석이 사망하면서 남북 정상회담은 무산됐다. 2010년과 2011년에도 그는 억류된 미국인 석방 교섭을 위해 방북했으나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과 회담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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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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