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논쟁마저 친북ㆍ반북 가르는 현실 충격적"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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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03-30 09:18 조회966회 댓글0건본문
"과학 논쟁마저 친북ㆍ반북 가르는 현실 충격적"
[인터뷰] '천안함' 이승헌 교수 "北과 연관되면 거짓이 사실로 둔갑"
기사입력 2011-03-28 오후 1:47:23
정부의 천안함 조사 결과 발표에 조작과 모순이 있음을 주장해온 이승헌 미 버지니아대 물리학과 교수를 만났다.
이승헌 교수는 처음으로 문제를 제기했던 작년 6월 초 이후의 시기를 회고하며 "분단이 극복되지 않으면 남한 사회의 모순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분단체제론의 논리가 절대성과 존엄성을 인정받아야 하는 과학 분야에서도 적용되고 있다는 생각이 절실히 다가왔다"고 말했다.
이 교수가 과학적 논쟁마저 친북/반북의 틀로 가르는 현실에 대해 길게 얘기하면서 개탄한 것은 그만큼 그간 '색깔론'에 시달려왔다는 방증으로 보였다.
이 인터뷰 다음날인 2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그가 발표를 시작하자 한 사람이 뛰쳐나와 '빨갱이 XX'라고 외치는 장면은 그가 지난 10개월간 겪은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한국 현실에 문화 충격 받았다"
프레시안 : 천안함 사건 발생 1년이 지났고, 이승헌 교수가 민·군 합동조사단 발표의 모순점을 지적한지는 10개월이 지났다. 과거 연구만 하던 때와는 다른 시간을 보낸 소감은?
이승헌 : 모든 과학적 현상은 설명이 가능해야 한다. 재연도 가능해야 한다. 어떤 가설과 이론이 나오면 실험을 통해 검증을 받는다. 똑같은 실험을 다른 사람도 해본다. 그 과정을 통해 가설이나 이론이 진실인지 아닌지 즉시 검증되기 때문에 확신이 있지 않으면 이론을 함부로 발표할 수 없다. 현상을 설명하지 못하는 이론은 수학적으로 아무리 아름다워도 과학적 진실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과학적 진실의 절대성이 있다.
1980년대 초에 대학을 다녔다. 운동권은 아니었어도 시대가 시대인 만큼 사회적인 일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지만, 85년 대학원에 들어가면서부터 지금까지 26년간 물리학 연구에만 전념했다. 그러나 천안함 조사 과정에서 내 전공분야인 엑스선 산란(XRD)과 관련한 얘기가 나오기에 들여다본 후 천안함 문제에 뛰어들고 나서는 문화 충격 같은 걸 느꼈다. 이미지 조작이 이뤄지고, 과학적 사실이 아닌 걸 사실이라고 강변하는데, 한국 사회에서 그게 통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국방부와 민·군 합동조사단이 북한의 어뢰에 의해 천안함이 파괴됐다고 주장하면서 내놓은 과학적 증거라는 게 뻔하다. 소위 흡착물질(사실은 흡착물이 아니라 침전물이라는 뜻에서 이 교수는 '소위'라는 말을 반드시 붙인다)밖에 없다. 천안함 선체, 1번 어뢰추진체, 합조단의 모의폭발실험에서 나온 흡착물질 이 세 가지가 모두 산화알루미늄이기 때문에 천안함은 '1번 어뢰'에 의해 파괴됐다는 게 합조단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소위 흡착물질이 무엇인가는 작년 6월 캐나다 매니토바대 지질과학과의 양판석 분석실장에 의해 이미 결론이 났다. 천안함 선체와 어뢰추진체의 흡착물은 산화알루미늄이 아니라 수산화알루미늄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후 양판석 실장과 안동대 지구환경과학과의 정기영 교수는 각각 독립적으로 실제 천안함에서 나온 물질을 가지고 분석했다. 선체와 어뢰에서 나왔다며 국방부가 제공한 물질을 받아서 엄청난 실험·분석 기구들을 써서 밝혀냈다.
두 지질학자가 각각 1개월 정도의 기간 동안 차근차근 연구하고 분석해 보니 그 물질은 어뢰 폭발로 나온 산화알루미늄이 아니라 알루미늄황산염수화물이라는 수산화알루미늄 계열의 물질이었다.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이다. 논쟁은 그것으로 끝났다. 다른 주장을 했던 사람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과학자들의 엄밀한 분석이 안 통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지금도 그렇다. 정부는 비밀주의를 고수하면서 자신들의 결론과 전혀 다르게 나온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무시하고 거부했다. 무시할 수 없는 증거가 나오니까 소용없는 거라는 태도를 보였다. 상관없는 문제라고 두루뭉술 넘어가고, 핵심을 벗어나는 해명만 반복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안타깝고 심적으로도 힘들었다. 한국 사회가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통해 정치적인 민주화를 이뤘는데, 이명박 정부 들어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힘 있다는 언론들은 사실이 아닌 걸 사실인 양 반복해 보도하고 영향력을 발휘하는 걸 보면서 우리 사회가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을 했다.
"과학 분야에서도 분단체제 작동"
프레시안 : 이승헌 교수와 양판석 박사 등 해외에 있는 소수의 과학자들만 천안함 문제에 적극적이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이승헌 :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닐 때는 실험기구 같은 게 참 빈약했다. 당시 교수나 학생들은 모두 연구의 토대를 닦고 환경을 개선시키려고 엄청나게 고생했다. 그 후 90년대와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정부가 과학 분야에 많은 투자를 했다. 그 결과, 지금 보면 한국의 대학에도 좋은 연구 환경이 마련됐다. 세계 최첨단은 아니지만 웬만한 미국 주립대의 연구실보다 어쩌면 환경이 더 좋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도 좋은 논문들이 많이 나온다. 물리학 분야만 보자면, 과거에는 미국 물리학회가 발간하는 <피지컬 리뷰 레터스>라는 학술지에 한국 학자들의 논문이 하나만 실려도 큰 뉴스였다. 그러나 지금은 여러 한국 과학자들의 논문이 그 잡지에 실린다. 한국의 연구 수준이 많이 올라간 것이다. 한국에서 곧 과학 부문 노벨상이 나올 것이라는 말은 빈말이 아니다.
그러나 천안함 사건을 겪으면서 과학의 존엄성과 정치적 독립성은 여전히 많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다. 천안함 문제 같은 게 나오면 관련 학계에서 한 번 검증해 보겠다고 나서는 게 당연한 것이라고 본다. 정부가 과학의 이름을 빌어 정치·외교적으로 파장이 큰 주장을 했고, 한반도와 동아시아가 들썩거렸다. 정부가 과학적 증거라는 걸 기반으로 그런 변화를 꾀하려 한다면 과학자들은 당연히 검증하자고 나섰어야 한다. 특히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의견, 나중에 보면 다 맞았던 반론이 나왔다면, 과학자들이 달려드는 게 당연한데, 국내 과학계의 움직임은 없었다.
특히 북한과 연관된 문제라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북한 관련 문제에서 한국 과학계에는 부끄러운 과거가 있다. 1986년 금강산댐 사건. 나중에 일류대학 총장까지 지냈던 선우 모 교수가 당시 TV에 나와서 금강산댐이 터지면 63빌딩 몇 층까지 잠긴다고 떠들었다. 그걸 과학적인 근거라고 제시하면서 평화의 댐을 만들자고 성금을 걷고 법석을 떨었다. 그러나 결국 과학적으로 거짓이었다는 게 판명됐다. 그런데도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이 유야무야 넘어갔다. 그런 주장을 한 당사자도 문제였지만, 반대 의견을 내는 과학자가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은 과학계 전체의 부끄러운 과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대강 문제처럼 국내적인 사안에서 과학적인 논쟁을 할 때는 비판적인 의견을 내는 게 비교적 자유로운 것 같다.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도 물론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나중에는 서울대가 진상조사단을 만들었다. 북한과 연계된 문제는 아니었으니까.
그렇지만 북한과 연계가 된 문제에서는 아직도 적색공포증이 있는 것 같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주장해 온 분단체제론, 즉 분단이 극복되지 않으면 남한 사회의 모순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논리가 절대성과 존엄성을 인정받아야 하는 과학 분야에서도 적용되고 있다는 생각이 절실히 다가왔다.
남북 정상회담을 두 번이나 했고, 북한하고 분위기가 험악해도 이제 사재기 같은 건 없어진 시절인데도 불구하고 천안함처럼 북한과 관계된 문제에 대한 논쟁은 사회적으로 질겁한다는 느낌이었다. 과학 논쟁마저 친북/반북 프레임으로 나누는 분위기 속에서 자기 의견을 자신 있게 내놓기가 어려우니까 과학자들이 나서지 않는 것 같다. 합리적인 분들이어서 평소에 존경했던 분들, 충분히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분들도 이 문제에서는 기대 이하의 태도를 보였다.
물론 실망스럽긴 해도 사회적인 분위기가 그렇기 때문에 크게 뭐라고 할 수 없는 측면도 있다. 사실 나처럼 해외에 있는 사람들은 비판적인 말을 하는데 그리 큰 용기가 필요한 건 아니지 않나. 내가 국내에 있었다면 용기를 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덕망과 영향력 있는 분들이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지 않았나 아쉬우면서도 한편으론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런 와중에 안동대 정기영 교수가 학자적 양심에 따라 자신의 실명을 걸고 발언한 것은 정말 뜻 깊은 일이었다. 아직 우리 사회가 갈 길이 멀다고 했는데, 정 교수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는 민주화를 위한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대중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프레시안 : 어뢰가 폭발했으면 어뢰추진체의 '1번' 글씨가 타버렸어야 한다는 이 교수의 주장에 대해 송태호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교수가 글씨는 남아 있는 게 정상이라고 주장하면서 논쟁을 했었다.
이승헌 : 그 논쟁은 작년에 있었는데, 한참 후에 송태호 교수가 계간지 <시대정신> 2010년 겨울호에 기고를 했다. 그래서 내가 <시대정신>에 반박문을 보냈더니 흡착물질에 관한 내용은 안 되고 '1번' 글씨에 관한 반박만 가능하다면서 게재를 거부했다. <프레시안>이 대신 실어줘서 2월 25일 발표가 됐는데, 거기에 내 반박이 자세히 나와 있다. (☞ "대한민국, 과학의 양심을 지켜라" 바로가기)
오늘은 그 글에서 언급하지 않은 몇 가지만 덧붙이겠다. 송태호 교수의 계산에 따르면, TNT 250kg가 폭발하면 33cm 반경의 가스 버블이 생긴다. 그런데 합조단의 윤덕용 단장은 작년 6월 4일 <CBS> 라디오 '이종훈의 뉴스쇼'에 나와서 250kg의 폭약이 터지면 버블의 크기가 10m 정도 된다고 분명히 말했다. 물론 윤 단장은 버블이 팽창되기 전에 어뢰가 튕겨나가서 열전달이 안됐기 때문에 1번 글씨가 남았다고 주장했지만, 어쨌든 버블의 크기는 10m가 될 거라고 계산한 것이다. 두 사람의 주장이 크게 충돌하는 것인데, 물리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송 교수의 주장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송 교수가 며칠 전 <중앙일보>하고 인터뷰를 했던데, 천안함의 진실은 양심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실력이 중요하다는 식으로 말했다. 내가 실력이 없다는 얘긴데, 사실 송 교수 주장의 모순점을 제일 먼저 발견한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
나는 1번 글씨에 집착하는 건 논점을 흐리는 것이고 흡착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처음에는 송 교수의 주장에 별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화공과'라는 아이디를 쓰는 대학원생이 송 교수 해석의 허점을 지적했다. 어뢰가 폭발하면 고온고압의 버블이 비가역적인 과정으로 팽창하는데 송 교수는 왜 이상기체(ideal gas)의 가역적 과정에나 적용하는 공식을 썼냐고 지적한 것이다. 카이스트 소속인 것 같던데 청출어람이라고 할까.
옛말에, 극소수의 사람은 영원히 속일 수 있지만 대중은 아주 잠시만 속일 수 있을 뿐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고 했다. 그 '잠시'가 옛날에는 정말 오랜 기간이었을 텐데, 지금은 말 그대로 '잠시'이다. 인터넷 때문에 많은 사람을 짧은 시간 동안에도 속일 수 없게 됐다. 송 교수의 주장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박은 그런 케이스다.
프레시안 : <조선일보>가 이 교수를 강하게 공격하고 있다.
이승헌 : 합조단의 주장은 터무니없음이 과학적으로 증명되면서 천안함에 관한 과학적 논쟁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왜 진전이 없고, 보통사람들은 진실을 잘 모르는지는 <조선일보> 식의 보도 태도와 얽혀 있다고 본다.
작년에 도쿄에서 서재정 존스홉킨스대 교수와 함께 외신기자들을 상대로 기자회견을 한 적이 있었다. 기자회견 당일 <조선일보> 부장인가가 쓴 칼럼을 보니까 '천안함 사고가 난 한국도 아니고, 자신들이 활동하는 미국도 아니고, 왜 일본에서 기자회견을 하느냐. 자신이 없어서 그러는 것 아니냐'고 하면서 우리를 음모론자로 몰아갔다. <조선일보>는 합조단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다 음모론자이고 사이비 과학자라고 한다.
왜 기자회견을 일본에서 했느냐? 내가 당시에 3개월간 도쿄대 객원교수로 있었고, 서재정 교수는 학회 참석차 일본에 들를 일이 있어서였다. 그렇게 시기가 맞아서 도쿄에서 한 것이다. 그 뒤로 미국에 가서 유엔 엔지오를 상대로도 발표를 했었고, 뉴욕대에서도 발표하고 그랬다. 그동안 한국에서 하지 않았던 것은 우리를 불러주는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한국에서 처음으로 발표를 하는 이유는? 발표 자리가 마련돼서 나를 불렀기 때문이다. 간단하다.
<조선일보>는 나를 공격하면서 내가 하지도 않은 주장을 했다고 사실을 왜곡했다. 예컨대 지난 21일 기사에서 '이승헌 교수는 천안함 잔해에서 발견된 흡착물질이 어뢰추진체에 남아 있는 물질과 다르다고 주장했다'고 썼던데,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나는 모의폭발실험에서 나온 건 산화알루미늄 흡착물이 분명한데, 그에 대한 에너지분광분석(EDS) 데이터가 천안함 선체와 어뢰추진체에서 나온 물질의 EDS 데이터하고 같기 때문에 그건 결국 폭발실험 EDS 데이터가 조작됐음을 뜻한다고 주장했을 뿐이다.
내가 뭘 조작했다고 주장하는지 내 글을 읽기는 했는지 모르겠다. 그런 식으로 자꾸 내 말을 왜곡해서 논점을 흐린다. <조선일보>가 스스로를 1등 신문이라고 하는데, 뻔히 보이는 과학적 사실을 왜곡하고 비틀거나 거짓을 보도해서 많은 대중들을 호도했다. 그런 신문이 1등 신문이라는 건 한국 사회의 불행이다. 그걸 극복해야 한다. 내 주장을 왜곡해 보도한 <조선일보>에 대해 언론중재위원회 제소 등 대응을 적극 검토할 생각이다.
프레시안 : 논쟁을 끝낼 수 있는 제안을 한다면?
이승헌 : 국정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아직까지 논쟁할 거리가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모든 논쟁을 깨끗하게 종식시키기 위해 모의폭발실험을 공개적으로 다시 할 것을 제안한다. 또 한국물리학회 같이 공식적인 기구가 주최하는 전문가들의 토론이 열려서 과학적인 검증을 하면 소모적인 논쟁을 종식시키는 길이 될 것이다.
프레시안 : 오랜 시간 감사하다.
● 이승헌은 누구?
ⓒ프레시안(최형락)
고려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학사·석사) 미 존스홉킨스대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미국 국립표준연구소 물리학자로 있었다. 현재 미 버지니아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중성자와 엑스레이 산란을 이용한 고체물리학 전공.
미 국립표준연구소 젊은과학자상을 받았으며 재미한국물리학자협회의 젊은과학자상과 미 중성자산란협회 과학상을 수상했다. 5편의 <네이처> 자매지 논문을 포함해 현재까지 약 100여 편의 SCI 논문을 출판했다.
2010년 천안함 문제를 다룬 <과학의 양심, 천안함을 추적하다>(창비)를 펴냈다.
작성일자 : 2011년 03월 29일
[인터뷰] '천안함' 이승헌 교수 "北과 연관되면 거짓이 사실로 둔갑"
기사입력 2011-03-28 오후 1:47:23
정부의 천안함 조사 결과 발표에 조작과 모순이 있음을 주장해온 이승헌 미 버지니아대 물리학과 교수를 만났다.
이승헌 교수는 처음으로 문제를 제기했던 작년 6월 초 이후의 시기를 회고하며 "분단이 극복되지 않으면 남한 사회의 모순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분단체제론의 논리가 절대성과 존엄성을 인정받아야 하는 과학 분야에서도 적용되고 있다는 생각이 절실히 다가왔다"고 말했다.
이 교수가 과학적 논쟁마저 친북/반북의 틀로 가르는 현실에 대해 길게 얘기하면서 개탄한 것은 그만큼 그간 '색깔론'에 시달려왔다는 방증으로 보였다.
이 인터뷰 다음날인 2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그가 발표를 시작하자 한 사람이 뛰쳐나와 '빨갱이 XX'라고 외치는 장면은 그가 지난 10개월간 겪은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한국 현실에 문화 충격 받았다"
프레시안 : 천안함 사건 발생 1년이 지났고, 이승헌 교수가 민·군 합동조사단 발표의 모순점을 지적한지는 10개월이 지났다. 과거 연구만 하던 때와는 다른 시간을 보낸 소감은?
이승헌 : 모든 과학적 현상은 설명이 가능해야 한다. 재연도 가능해야 한다. 어떤 가설과 이론이 나오면 실험을 통해 검증을 받는다. 똑같은 실험을 다른 사람도 해본다. 그 과정을 통해 가설이나 이론이 진실인지 아닌지 즉시 검증되기 때문에 확신이 있지 않으면 이론을 함부로 발표할 수 없다. 현상을 설명하지 못하는 이론은 수학적으로 아무리 아름다워도 과학적 진실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과학적 진실의 절대성이 있다.
1980년대 초에 대학을 다녔다. 운동권은 아니었어도 시대가 시대인 만큼 사회적인 일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지만, 85년 대학원에 들어가면서부터 지금까지 26년간 물리학 연구에만 전념했다. 그러나 천안함 조사 과정에서 내 전공분야인 엑스선 산란(XRD)과 관련한 얘기가 나오기에 들여다본 후 천안함 문제에 뛰어들고 나서는 문화 충격 같은 걸 느꼈다. 이미지 조작이 이뤄지고, 과학적 사실이 아닌 걸 사실이라고 강변하는데, 한국 사회에서 그게 통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국방부와 민·군 합동조사단이 북한의 어뢰에 의해 천안함이 파괴됐다고 주장하면서 내놓은 과학적 증거라는 게 뻔하다. 소위 흡착물질(사실은 흡착물이 아니라 침전물이라는 뜻에서 이 교수는 '소위'라는 말을 반드시 붙인다)밖에 없다. 천안함 선체, 1번 어뢰추진체, 합조단의 모의폭발실험에서 나온 흡착물질 이 세 가지가 모두 산화알루미늄이기 때문에 천안함은 '1번 어뢰'에 의해 파괴됐다는 게 합조단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소위 흡착물질이 무엇인가는 작년 6월 캐나다 매니토바대 지질과학과의 양판석 분석실장에 의해 이미 결론이 났다. 천안함 선체와 어뢰추진체의 흡착물은 산화알루미늄이 아니라 수산화알루미늄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후 양판석 실장과 안동대 지구환경과학과의 정기영 교수는 각각 독립적으로 실제 천안함에서 나온 물질을 가지고 분석했다. 선체와 어뢰에서 나왔다며 국방부가 제공한 물질을 받아서 엄청난 실험·분석 기구들을 써서 밝혀냈다.
두 지질학자가 각각 1개월 정도의 기간 동안 차근차근 연구하고 분석해 보니 그 물질은 어뢰 폭발로 나온 산화알루미늄이 아니라 알루미늄황산염수화물이라는 수산화알루미늄 계열의 물질이었다.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이다. 논쟁은 그것으로 끝났다. 다른 주장을 했던 사람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과학자들의 엄밀한 분석이 안 통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지금도 그렇다. 정부는 비밀주의를 고수하면서 자신들의 결론과 전혀 다르게 나온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무시하고 거부했다. 무시할 수 없는 증거가 나오니까 소용없는 거라는 태도를 보였다. 상관없는 문제라고 두루뭉술 넘어가고, 핵심을 벗어나는 해명만 반복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안타깝고 심적으로도 힘들었다. 한국 사회가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통해 정치적인 민주화를 이뤘는데, 이명박 정부 들어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힘 있다는 언론들은 사실이 아닌 걸 사실인 양 반복해 보도하고 영향력을 발휘하는 걸 보면서 우리 사회가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을 했다.
"과학 분야에서도 분단체제 작동"
프레시안 : 이승헌 교수와 양판석 박사 등 해외에 있는 소수의 과학자들만 천안함 문제에 적극적이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이승헌 :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닐 때는 실험기구 같은 게 참 빈약했다. 당시 교수나 학생들은 모두 연구의 토대를 닦고 환경을 개선시키려고 엄청나게 고생했다. 그 후 90년대와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정부가 과학 분야에 많은 투자를 했다. 그 결과, 지금 보면 한국의 대학에도 좋은 연구 환경이 마련됐다. 세계 최첨단은 아니지만 웬만한 미국 주립대의 연구실보다 어쩌면 환경이 더 좋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도 좋은 논문들이 많이 나온다. 물리학 분야만 보자면, 과거에는 미국 물리학회가 발간하는 <피지컬 리뷰 레터스>라는 학술지에 한국 학자들의 논문이 하나만 실려도 큰 뉴스였다. 그러나 지금은 여러 한국 과학자들의 논문이 그 잡지에 실린다. 한국의 연구 수준이 많이 올라간 것이다. 한국에서 곧 과학 부문 노벨상이 나올 것이라는 말은 빈말이 아니다.
그러나 천안함 사건을 겪으면서 과학의 존엄성과 정치적 독립성은 여전히 많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다. 천안함 문제 같은 게 나오면 관련 학계에서 한 번 검증해 보겠다고 나서는 게 당연한 것이라고 본다. 정부가 과학의 이름을 빌어 정치·외교적으로 파장이 큰 주장을 했고, 한반도와 동아시아가 들썩거렸다. 정부가 과학적 증거라는 걸 기반으로 그런 변화를 꾀하려 한다면 과학자들은 당연히 검증하자고 나섰어야 한다. 특히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의견, 나중에 보면 다 맞았던 반론이 나왔다면, 과학자들이 달려드는 게 당연한데, 국내 과학계의 움직임은 없었다.
특히 북한과 연관된 문제라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북한 관련 문제에서 한국 과학계에는 부끄러운 과거가 있다. 1986년 금강산댐 사건. 나중에 일류대학 총장까지 지냈던 선우 모 교수가 당시 TV에 나와서 금강산댐이 터지면 63빌딩 몇 층까지 잠긴다고 떠들었다. 그걸 과학적인 근거라고 제시하면서 평화의 댐을 만들자고 성금을 걷고 법석을 떨었다. 그러나 결국 과학적으로 거짓이었다는 게 판명됐다. 그런데도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이 유야무야 넘어갔다. 그런 주장을 한 당사자도 문제였지만, 반대 의견을 내는 과학자가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은 과학계 전체의 부끄러운 과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대강 문제처럼 국내적인 사안에서 과학적인 논쟁을 할 때는 비판적인 의견을 내는 게 비교적 자유로운 것 같다.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도 물론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나중에는 서울대가 진상조사단을 만들었다. 북한과 연계된 문제는 아니었으니까.
그렇지만 북한과 연계가 된 문제에서는 아직도 적색공포증이 있는 것 같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주장해 온 분단체제론, 즉 분단이 극복되지 않으면 남한 사회의 모순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논리가 절대성과 존엄성을 인정받아야 하는 과학 분야에서도 적용되고 있다는 생각이 절실히 다가왔다.
남북 정상회담을 두 번이나 했고, 북한하고 분위기가 험악해도 이제 사재기 같은 건 없어진 시절인데도 불구하고 천안함처럼 북한과 관계된 문제에 대한 논쟁은 사회적으로 질겁한다는 느낌이었다. 과학 논쟁마저 친북/반북 프레임으로 나누는 분위기 속에서 자기 의견을 자신 있게 내놓기가 어려우니까 과학자들이 나서지 않는 것 같다. 합리적인 분들이어서 평소에 존경했던 분들, 충분히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분들도 이 문제에서는 기대 이하의 태도를 보였다.
물론 실망스럽긴 해도 사회적인 분위기가 그렇기 때문에 크게 뭐라고 할 수 없는 측면도 있다. 사실 나처럼 해외에 있는 사람들은 비판적인 말을 하는데 그리 큰 용기가 필요한 건 아니지 않나. 내가 국내에 있었다면 용기를 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덕망과 영향력 있는 분들이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지 않았나 아쉬우면서도 한편으론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런 와중에 안동대 정기영 교수가 학자적 양심에 따라 자신의 실명을 걸고 발언한 것은 정말 뜻 깊은 일이었다. 아직 우리 사회가 갈 길이 멀다고 했는데, 정 교수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는 민주화를 위한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대중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프레시안 : 어뢰가 폭발했으면 어뢰추진체의 '1번' 글씨가 타버렸어야 한다는 이 교수의 주장에 대해 송태호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교수가 글씨는 남아 있는 게 정상이라고 주장하면서 논쟁을 했었다.
이승헌 : 그 논쟁은 작년에 있었는데, 한참 후에 송태호 교수가 계간지 <시대정신> 2010년 겨울호에 기고를 했다. 그래서 내가 <시대정신>에 반박문을 보냈더니 흡착물질에 관한 내용은 안 되고 '1번' 글씨에 관한 반박만 가능하다면서 게재를 거부했다. <프레시안>이 대신 실어줘서 2월 25일 발표가 됐는데, 거기에 내 반박이 자세히 나와 있다. (☞ "대한민국, 과학의 양심을 지켜라" 바로가기)
오늘은 그 글에서 언급하지 않은 몇 가지만 덧붙이겠다. 송태호 교수의 계산에 따르면, TNT 250kg가 폭발하면 33cm 반경의 가스 버블이 생긴다. 그런데 합조단의 윤덕용 단장은 작년 6월 4일 <CBS> 라디오 '이종훈의 뉴스쇼'에 나와서 250kg의 폭약이 터지면 버블의 크기가 10m 정도 된다고 분명히 말했다. 물론 윤 단장은 버블이 팽창되기 전에 어뢰가 튕겨나가서 열전달이 안됐기 때문에 1번 글씨가 남았다고 주장했지만, 어쨌든 버블의 크기는 10m가 될 거라고 계산한 것이다. 두 사람의 주장이 크게 충돌하는 것인데, 물리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송 교수의 주장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송 교수가 며칠 전 <중앙일보>하고 인터뷰를 했던데, 천안함의 진실은 양심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실력이 중요하다는 식으로 말했다. 내가 실력이 없다는 얘긴데, 사실 송 교수 주장의 모순점을 제일 먼저 발견한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
나는 1번 글씨에 집착하는 건 논점을 흐리는 것이고 흡착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처음에는 송 교수의 주장에 별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화공과'라는 아이디를 쓰는 대학원생이 송 교수 해석의 허점을 지적했다. 어뢰가 폭발하면 고온고압의 버블이 비가역적인 과정으로 팽창하는데 송 교수는 왜 이상기체(ideal gas)의 가역적 과정에나 적용하는 공식을 썼냐고 지적한 것이다. 카이스트 소속인 것 같던데 청출어람이라고 할까.
옛말에, 극소수의 사람은 영원히 속일 수 있지만 대중은 아주 잠시만 속일 수 있을 뿐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고 했다. 그 '잠시'가 옛날에는 정말 오랜 기간이었을 텐데, 지금은 말 그대로 '잠시'이다. 인터넷 때문에 많은 사람을 짧은 시간 동안에도 속일 수 없게 됐다. 송 교수의 주장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박은 그런 케이스다.
프레시안 : <조선일보>가 이 교수를 강하게 공격하고 있다.
이승헌 : 합조단의 주장은 터무니없음이 과학적으로 증명되면서 천안함에 관한 과학적 논쟁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왜 진전이 없고, 보통사람들은 진실을 잘 모르는지는 <조선일보> 식의 보도 태도와 얽혀 있다고 본다.
작년에 도쿄에서 서재정 존스홉킨스대 교수와 함께 외신기자들을 상대로 기자회견을 한 적이 있었다. 기자회견 당일 <조선일보> 부장인가가 쓴 칼럼을 보니까 '천안함 사고가 난 한국도 아니고, 자신들이 활동하는 미국도 아니고, 왜 일본에서 기자회견을 하느냐. 자신이 없어서 그러는 것 아니냐'고 하면서 우리를 음모론자로 몰아갔다. <조선일보>는 합조단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다 음모론자이고 사이비 과학자라고 한다.
왜 기자회견을 일본에서 했느냐? 내가 당시에 3개월간 도쿄대 객원교수로 있었고, 서재정 교수는 학회 참석차 일본에 들를 일이 있어서였다. 그렇게 시기가 맞아서 도쿄에서 한 것이다. 그 뒤로 미국에 가서 유엔 엔지오를 상대로도 발표를 했었고, 뉴욕대에서도 발표하고 그랬다. 그동안 한국에서 하지 않았던 것은 우리를 불러주는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한국에서 처음으로 발표를 하는 이유는? 발표 자리가 마련돼서 나를 불렀기 때문이다. 간단하다.
<조선일보>는 나를 공격하면서 내가 하지도 않은 주장을 했다고 사실을 왜곡했다. 예컨대 지난 21일 기사에서 '이승헌 교수는 천안함 잔해에서 발견된 흡착물질이 어뢰추진체에 남아 있는 물질과 다르다고 주장했다'고 썼던데,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나는 모의폭발실험에서 나온 건 산화알루미늄 흡착물이 분명한데, 그에 대한 에너지분광분석(EDS) 데이터가 천안함 선체와 어뢰추진체에서 나온 물질의 EDS 데이터하고 같기 때문에 그건 결국 폭발실험 EDS 데이터가 조작됐음을 뜻한다고 주장했을 뿐이다.
내가 뭘 조작했다고 주장하는지 내 글을 읽기는 했는지 모르겠다. 그런 식으로 자꾸 내 말을 왜곡해서 논점을 흐린다. <조선일보>가 스스로를 1등 신문이라고 하는데, 뻔히 보이는 과학적 사실을 왜곡하고 비틀거나 거짓을 보도해서 많은 대중들을 호도했다. 그런 신문이 1등 신문이라는 건 한국 사회의 불행이다. 그걸 극복해야 한다. 내 주장을 왜곡해 보도한 <조선일보>에 대해 언론중재위원회 제소 등 대응을 적극 검토할 생각이다.
프레시안 : 논쟁을 끝낼 수 있는 제안을 한다면?
이승헌 : 국정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아직까지 논쟁할 거리가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모든 논쟁을 깨끗하게 종식시키기 위해 모의폭발실험을 공개적으로 다시 할 것을 제안한다. 또 한국물리학회 같이 공식적인 기구가 주최하는 전문가들의 토론이 열려서 과학적인 검증을 하면 소모적인 논쟁을 종식시키는 길이 될 것이다.
프레시안 : 오랜 시간 감사하다.
● 이승헌은 누구?
ⓒ프레시안(최형락)
고려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학사·석사) 미 존스홉킨스대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미국 국립표준연구소 물리학자로 있었다. 현재 미 버지니아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중성자와 엑스레이 산란을 이용한 고체물리학 전공.
미 국립표준연구소 젊은과학자상을 받았으며 재미한국물리학자협회의 젊은과학자상과 미 중성자산란협회 과학상을 수상했다. 5편의 <네이처> 자매지 논문을 포함해 현재까지 약 100여 편의 SCI 논문을 출판했다.
2010년 천안함 문제를 다룬 <과학의 양심, 천안함을 추적하다>(창비)를 펴냈다.
작성일자 : 2011년 03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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