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고아 2만여명 세계 떠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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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03-10 09:23 조회1,426회 댓글0건본문
기사입력 2011-03-10 03:10 | 최종수정 2011-03-10 08:53
'탈북고아 입양법안' 등 미국은 적극적인데 한국은 사실상 방치상태
인신매매에 노출된 탈북여성들… 외국인 아빠 둔 아이는 버림받기 일쑤
"어머니는 기억나지 않고 아버지 소식은 몰라요. 한국에 오기 전에 많이 굶었어요."
경기도 안산시의 무연고 탈북 청소년 그룹홈 '우리집'에 사는 진혁(16·이하 가명)이의 키는 150㎝다.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진혁이는 같은 반 친구들보다 세 살 많은데 체구는 훨씬 작다.
진혁이는 북한에 대(大)기근이 닥쳤던 1995년 함경북도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진혁이가 어렸을 때 집을 나갔다. 아버지도 식량을 구하러 간다고 집을 비우는 날이 태반이었다. 진혁이는 열두 살 무렵부터 장마당을 돌아다니며 구걸을 했다. 이른바 '꽃제비'였다.
2009년 1월 진혁이는 아버지와 함께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넜다. 진혁이가 강변 수풀에 숨어 있는데 아버지 쪽에서 소란이 일었다. 중국 국경수비대에 붙들린 아버지는 북송당했다. 진혁이는 혼자 중국을 떠돌다 선양(瀋陽)에서 탈북 브로커를 만났다. "한국에 데려다주고 (정부에서 나오는) 정착지원금 일부를 떼겠다"는 브로커의 손에 이끌려 한국으로 건너왔다.
탈북 고아는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탈북 과정이나 한국에 와서 부모와 떨어진 아이들, 북한에서 부모를 잃고 혼자 떠난 아이들, 탈북 여성이 중국 등 제3국에서 현지 남성과 사이에서 낳은 뒤 돌보지 못하는 아이들이다.
북한민주화네트워크 김윤태 사무총장은 "정확한 조사가 어려워 단체마다 추정치가 다르지만 1만~2만여명의 아이들이 중국 등 외국에 떠돌거나 일부 남한에서 살고 있다"고 말했다. 남북 분단의 비극 중 비극이 탈북 고아다. 그들 한명 한명엔 분단 모순이 응어리져 있다.
하지만 이들을 향한 따뜻한 손길은 거의 없다. 지난 2월 말 멀리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공화당 리처드 버 상원 의원(노스캐롤라이나주)이 '2011년 탈북 고아(孤兒) 입양 법안'을 발의했다.
여섯 살 때 탈북한 효선(15)이는 "이웃집 담 아래에서 울고 있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손을 잡고 같이 가자고 했던 것만 생각난다"고 했다. 효선이의 기억 속엔 베트남을 거쳐 한국에 오기까지 기간이 하얀 공백이다. 부모가 어떻게 됐는지도 모른다. 효선이를 진찰한 의사는 "한참 자랄 나이에 굶주림에 시달린 탓인지 뇌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고 했다.
효선이는 머리 대신 몸으로 기억한다. 갈대가 무성한 강변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몸이 굳는다고 했다. 들키지 않고 국경을 넘기 위해 몇 시간씩 늪지대에 숨어 있던 기억이 떠올라서다.
북한에서부터 고아였거나 탈북 과정에서 부모와 떨어진 아이들은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이다. 한국에 와서 '무연고 북한 이탈 청소년'으로 인정받으면 정착지원금, 무상교육, 의료보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만 20세가 넘으면 영구임대주택도 1채 주어진다. '새터민 특례 전형'이 있어 대학 갈 희망도 있다.
하지만 민아(9)처럼 탈북 여성이 중국 등 제3국에서 낳은 뒤 돌보지 않는 아이들은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함북 출신인 민아 엄마는 2001년 20대 나이에 식량을 구하려고 두만강을 건넜다가 인신매매단에 넘겨졌다. 어딘지도 모르는 중국 마을로 몇 번이나 팔려 다녔다. 그러다가 50대 한족 남성과의 사이에서 민아를 낳았다.
어느 날 우연히 탈북자 지원단체 관계자를 만나 딸을 안은 채 도망쳤다. 2008년 한국에 정착한 민아 모녀(母女)는 지난 2년간 함께 살았다. 민아 엄마는 작년 초 "아이를 보면 자꾸 옛날 (중국) 일이 떠오른다"며 민아를 떠났다. 민아가 우리 정부의 지원을 받을 방법은 거의 없다.
통일부 관계자는 "중국 같은 제3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아버지가 제대로 돌볼 경우 해당 국적을 얻을 수 있다"며 "엄밀한 의미의 '북한 이탈 주민'이 아니기 때문에 어머니를 따라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는 있지만 탈북자들과 똑같은 지원을 받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탈북자 70%가 여성이고, 그들 중 상당수가 인신매매에 노출돼 있기 때문에 민아 같은 아이가 중국에 최소한 1만명쯤 될 것으로 민간 단체들은 추정한다.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윤여상 소장은 "중국인 아버지가 돈을 들여 손을 쓰면 중국 호구를 받을 수 있지만 탈북 여성과 매매혼을 하는 중국 남성의 생활수준도 높지 않기 때문에 아이가 합법적인 신분을 얻지 못하거나 아예 버림받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우리집'의 마석훈 대표는 "한국에 오지도 못한 채 중국에서 유령처럼 떠도는 아이들이 겪을 고통이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 geumbor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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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고아 입양법안' 등 미국은 적극적인데 한국은 사실상 방치상태
인신매매에 노출된 탈북여성들… 외국인 아빠 둔 아이는 버림받기 일쑤
"어머니는 기억나지 않고 아버지 소식은 몰라요. 한국에 오기 전에 많이 굶었어요."
경기도 안산시의 무연고 탈북 청소년 그룹홈 '우리집'에 사는 진혁(16·이하 가명)이의 키는 150㎝다.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진혁이는 같은 반 친구들보다 세 살 많은데 체구는 훨씬 작다.
진혁이는 북한에 대(大)기근이 닥쳤던 1995년 함경북도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진혁이가 어렸을 때 집을 나갔다. 아버지도 식량을 구하러 간다고 집을 비우는 날이 태반이었다. 진혁이는 열두 살 무렵부터 장마당을 돌아다니며 구걸을 했다. 이른바 '꽃제비'였다.
2009년 1월 진혁이는 아버지와 함께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넜다. 진혁이가 강변 수풀에 숨어 있는데 아버지 쪽에서 소란이 일었다. 중국 국경수비대에 붙들린 아버지는 북송당했다. 진혁이는 혼자 중국을 떠돌다 선양(瀋陽)에서 탈북 브로커를 만났다. "한국에 데려다주고 (정부에서 나오는) 정착지원금 일부를 떼겠다"는 브로커의 손에 이끌려 한국으로 건너왔다.
탈북 고아는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탈북 과정이나 한국에 와서 부모와 떨어진 아이들, 북한에서 부모를 잃고 혼자 떠난 아이들, 탈북 여성이 중국 등 제3국에서 현지 남성과 사이에서 낳은 뒤 돌보지 못하는 아이들이다.
북한민주화네트워크 김윤태 사무총장은 "정확한 조사가 어려워 단체마다 추정치가 다르지만 1만~2만여명의 아이들이 중국 등 외국에 떠돌거나 일부 남한에서 살고 있다"고 말했다. 남북 분단의 비극 중 비극이 탈북 고아다. 그들 한명 한명엔 분단 모순이 응어리져 있다.
하지만 이들을 향한 따뜻한 손길은 거의 없다. 지난 2월 말 멀리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공화당 리처드 버 상원 의원(노스캐롤라이나주)이 '2011년 탈북 고아(孤兒) 입양 법안'을 발의했다.
여섯 살 때 탈북한 효선(15)이는 "이웃집 담 아래에서 울고 있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손을 잡고 같이 가자고 했던 것만 생각난다"고 했다. 효선이의 기억 속엔 베트남을 거쳐 한국에 오기까지 기간이 하얀 공백이다. 부모가 어떻게 됐는지도 모른다. 효선이를 진찰한 의사는 "한참 자랄 나이에 굶주림에 시달린 탓인지 뇌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고 했다.
효선이는 머리 대신 몸으로 기억한다. 갈대가 무성한 강변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몸이 굳는다고 했다. 들키지 않고 국경을 넘기 위해 몇 시간씩 늪지대에 숨어 있던 기억이 떠올라서다.
북한에서부터 고아였거나 탈북 과정에서 부모와 떨어진 아이들은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이다. 한국에 와서 '무연고 북한 이탈 청소년'으로 인정받으면 정착지원금, 무상교육, 의료보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만 20세가 넘으면 영구임대주택도 1채 주어진다. '새터민 특례 전형'이 있어 대학 갈 희망도 있다.
하지만 민아(9)처럼 탈북 여성이 중국 등 제3국에서 낳은 뒤 돌보지 않는 아이들은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함북 출신인 민아 엄마는 2001년 20대 나이에 식량을 구하려고 두만강을 건넜다가 인신매매단에 넘겨졌다. 어딘지도 모르는 중국 마을로 몇 번이나 팔려 다녔다. 그러다가 50대 한족 남성과의 사이에서 민아를 낳았다.
어느 날 우연히 탈북자 지원단체 관계자를 만나 딸을 안은 채 도망쳤다. 2008년 한국에 정착한 민아 모녀(母女)는 지난 2년간 함께 살았다. 민아 엄마는 작년 초 "아이를 보면 자꾸 옛날 (중국) 일이 떠오른다"며 민아를 떠났다. 민아가 우리 정부의 지원을 받을 방법은 거의 없다.
통일부 관계자는 "중국 같은 제3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아버지가 제대로 돌볼 경우 해당 국적을 얻을 수 있다"며 "엄밀한 의미의 '북한 이탈 주민'이 아니기 때문에 어머니를 따라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는 있지만 탈북자들과 똑같은 지원을 받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탈북자 70%가 여성이고, 그들 중 상당수가 인신매매에 노출돼 있기 때문에 민아 같은 아이가 중국에 최소한 1만명쯤 될 것으로 민간 단체들은 추정한다.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윤여상 소장은 "중국인 아버지가 돈을 들여 손을 쓰면 중국 호구를 받을 수 있지만 탈북 여성과 매매혼을 하는 중국 남성의 생활수준도 높지 않기 때문에 아이가 합법적인 신분을 얻지 못하거나 아예 버림받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우리집'의 마석훈 대표는 "한국에 오지도 못한 채 중국에서 유령처럼 떠도는 아이들이 겪을 고통이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 geumbor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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