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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정부 해결책은? 특사 파견·인도적 지원 등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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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05-17 10:01 조회95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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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관계 경색 비교



역대 정부 해결책은? 특사 파견·인도적 지원 등 노력
남쪽 주도로 끈질긴 대화 나서
김대중·노무현 등 비료·쌀 지원
 
 
  김종철 기자 
 
 역대 정부 해결책은?
과거 정부에서도 남북관계 경색은 대화 중단 등 북한의 조처로 시작됐다.

김영삼 정부 때는 팀스피리트 훈련 재개 결정에 대해 북한이 남북대화 전면 거부를 선언(1993.1.29)함으로써 정부 출범 전부터 시작했다. 김대중 정부 때도 남쪽의 햇볕정책과 상호주의 원칙 고수에 대한 북한의 반발로 취임 초부터 당국간 대화가 안 풀렸다. 김대중 정부의 두번째 경색은 5차 장관급 회담 당일(2001.3.13) 북한의 갑작스런 불참으로 시작됐다. 노무현 정부 때의 경색도 2004년 7월 동남아에 머물던 탈북자 400여명을 한꺼번에 받아들인 데 반발한 북한이 다음달 15차 장관급 회담을 일방적으로 무산시키면서 비롯됐다.

이명박 정부의 경색도 출발은 같다. 정부 출범 직후인 2008년 3월 김하중 장관이 “북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개성공단 확대는 어렵다”고 말한 데 대해 북한이 개성의 남북경협사무소 남쪽 직원을 추방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경색 해소는 끈질긴 화해 시도와 특사 파견 등 남쪽 정부의 주도로 모두 이뤄졌다. 김대중 정부 때는 북한을 도와주겠다는 ‘베를린 선언’(2000.3.9)과 동시에 박지원 당시 문화부장관의 비밀 특사 활동으로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김대중 정부 두번째 경색과 노무현 정부 경색도 각각 임동원 특사(2002년 4월)와 정동영 특사(2005년 6월)의 평양 파견으로 끝났다. 물론 특사 파견이 성사되기 전에 대화 분위기 조성을 위한 노력이 꾸준히 진행됐다. 김대중 정부 때는 대북 비료 지원 및 민간 경협을 확대했으며, 노무현 정부 역시 쌀과 비료 등 인도적 지원을 계속하는 등 일관된 화해 협력 신호를 보냈다. 이에 비해 김영삼 정부는 1994년 6월 정상회담 추진과 95년 쌀 지원 등으로 조성된 화해 국면에서 조문 파동과 쌀 수송선의 인공기 게양 사건 등 돌발적인 사건이 발생하자 강경 대응으로 돌아섰으며, 결국 경색 해소에 실패했다. 김종철 선임기자




 
 
 
작성일자 : 2011년 05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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