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은 어떤 정치적 상황보다도 우선한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교수]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2-03-30 09:29 조회698회 댓글0건본문
“통일은 어떤 정치적 상황보다도 우선한다”
유홍준, ‘답사기 300만부 출간기념 토크콘서트’ 개최
2012년 03월 28일 (수) 18:40:31 김양희 기자 tongil@tongilnews.com
최근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로 국내 인문서 가운데 유일하게 300만부 판매 돌파 기록을 가지게 된 유홍준 명지대학교 교수는 지난 27일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개최한 ‘답사기 300만부 출간기념 토크콘서트’에서 “좌우를 떠나 통일염원은 어떤 정치적 상황보다도 우선한다”고 말했다.
이날 유 교수는 답사기의 명장면들을 소개하는 특강 중 에밀레종 이전 광경 사진을 보여주며 “에밀레종이 1975년 구 경주박물관 자리에서 현재의 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기던 날 매일 아침 새벽을 알려주던 에밀레종을 옮긴다고 경주시민들이 수만 명이 모였는데 경주시 인구가 당시 10만 명이니 경주 사람들은 모두 종을 따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너무 감동스러웠지만 사진은 구할 길이 없다고 초판에 글을 썼으나 이후 사진을 제공받아 책에 넣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진을 보면 대한통운의 트레일러에 실린 에밀레종 뒤를 시민들이 줄지어 따라오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에밀레종에는 누가 쓴 글인지는 모르지만 당시가 유신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남북통일’이라는 글자가 한자로 새겨져 있다”며 “통일염원은 어떤 정치적인 상황보다도 우선한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1997년 남과 북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고 분단 이후 최초로 북한을 답사하고 ‘북한문화유산답사기’ 4~5권 출간했으며 이날 토크콘서트에서는 북한을 답사하면서 느꼈던 점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유 교수는 “처음 책이름을 지을 때 문화유적답사기라고 할까 문화유물답사기라고 할까 정말 고민이 많았는데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을 함유하는 게 문화유산이라고 생각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라고 지었는데 북한도 문화유산이라고 표현해 깜짝 놀랐다”며 “북한도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을 모두 포함한다는 의미로 ‘문화유산’이라고 학술지를 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절대 내가 표절한 것은 아니다”고 말하며 관람객들에게 큰 웃음을 줬다.
그는 당시 좋은 글을 위해 해방 이후 북한에서 나온 문화유산 관련 논문을 모두 읽고 가 북측 인사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겨줬다고 한다.
특히 북측 참사들이 남측 인사들을 맞을 때 그들이 ‘고향의 봄’ 같은 남측 노래를 부르며 호감을 갖게 하는 것에 착안, 원활한 북녘답사를 위해 참사들이 놀라도록 북녘의 노래를 배워 불러주기도 했다고.
이는 2005년 6.15공동선언 5주년 행사에 대한민국 정부 대표단 일원으로 방북한 당시 문화재청장은 북측이 주최한 만찬 석상에서 북한노래를 불렀다가 중앙언론의 뭇매를 맞던 일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당시 북한 노래를 부른 것에 대해 정부 대표단이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며 공개 사과를 하기도 했다.
유 교수는 “소 떼 방북으로 금강산 관광이 열리기 직전까지 10여 차례 내금강까지 답사를 하면서 금강산답사기를 준비했다”고 전하면서 “언론에서는 북송에 대한 나쁜 인식이 있어 북송이라고 쓰지 않지만 소들은 돌아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방북이 아니라 북송이 맞다, 가만 보면 언론들이 참 맞지 않는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쓰곤 한다”고 꼬집기도 했다.
1993년 제1권 ‘남도 답사기’를 시작으로 2011년 제6권 ‘인생도처유상수’ 편을 출간한 유 교수는 올해 중으로 제7권 ‘제주도’ 편을 출간하고 이후 제8권인 ‘충청북도·경기도’ 편 등을 준비 중이다. 그러나 북한문화유산답사기에 대한 애정도 드러냈다.
그는 “누가 좀 한번 북한에 데려 갔으면 좋겠다, 함경도의 진흥왕순수비, 삼수갑산지역을 돌아보면 북한편도 한권 더 집필할 수 있을 텐데 아쉽다”고 전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리영희 선생의 부인 윤영자 씨가 유홍준 교수와의 인연을 전하기도 했다.
윤 씨는 “1978년 쯤 이었을 거예요, 한번은 유홍준 교수가 민가협 어머니들을 찾아와 원고료가 생겼다며 당시로는 거금인 10만원을 주고 갔어요, 유 교수는 서울대에 다닐 때 구속돼 민가협 어머니들과 잘 알고 지냈지만 워낙 큰돈이라 몇 년 후 그 돈을 갚지 못해 어쩌냐고 물었더니 ‘자식이 부모에게 준 돈을 어느 부모가 갚나요, 걱정마세요’ 했다, 그때 참 고마웠다”고 말했다. 리영희 선생은 처음으로 유홍준 교수 부부의 주례를 서기도 했다.
또한 백낙청 창비출판사 편집인이자 서울대 명예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책이 300만부가 팔렸다는 것은 우리 사회 스스로 문화적 저력이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며 “이를 축하하고 자축한다”고 말했다.
한편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출간 20여년 만에 300만부 판매를 돌파했다.
출판사 창비는 1993년부터 순차적으로 출간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6권이 이달까지 모두 300만부 넘게 팔려나간 것으로 집계됐다고 지난 12일 밝혔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2000년 제1권만으로 100만부를 돌파하고 2009년 9월 제1∼3권 통합 200쇄(230만부)를 간행하는 등 인문서 최초의 밀리언셀러를 기록하기도 했으며 이번 300만부 돌파도 인문서로는 최초이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이런 판매 기록 외에도 한국 인문서의 새로운 장을 개척하고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과 자긍심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또한 ‘답사기’를 들고 책에 등장하는 문화유산을 찾아 떠나는 전국적인 답사 붐이 일어 현장의 길라잡이 역할을 톡톡히 했으며 우리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여행문화, 놀이문화를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작성일자 : 2012년 03월 29일
유홍준, ‘답사기 300만부 출간기념 토크콘서트’ 개최
2012년 03월 28일 (수) 18:40:31 김양희 기자 tongil@tongilnews.com
최근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로 국내 인문서 가운데 유일하게 300만부 판매 돌파 기록을 가지게 된 유홍준 명지대학교 교수는 지난 27일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개최한 ‘답사기 300만부 출간기념 토크콘서트’에서 “좌우를 떠나 통일염원은 어떤 정치적 상황보다도 우선한다”고 말했다.
이날 유 교수는 답사기의 명장면들을 소개하는 특강 중 에밀레종 이전 광경 사진을 보여주며 “에밀레종이 1975년 구 경주박물관 자리에서 현재의 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기던 날 매일 아침 새벽을 알려주던 에밀레종을 옮긴다고 경주시민들이 수만 명이 모였는데 경주시 인구가 당시 10만 명이니 경주 사람들은 모두 종을 따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너무 감동스러웠지만 사진은 구할 길이 없다고 초판에 글을 썼으나 이후 사진을 제공받아 책에 넣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진을 보면 대한통운의 트레일러에 실린 에밀레종 뒤를 시민들이 줄지어 따라오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에밀레종에는 누가 쓴 글인지는 모르지만 당시가 유신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남북통일’이라는 글자가 한자로 새겨져 있다”며 “통일염원은 어떤 정치적인 상황보다도 우선한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1997년 남과 북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고 분단 이후 최초로 북한을 답사하고 ‘북한문화유산답사기’ 4~5권 출간했으며 이날 토크콘서트에서는 북한을 답사하면서 느꼈던 점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유 교수는 “처음 책이름을 지을 때 문화유적답사기라고 할까 문화유물답사기라고 할까 정말 고민이 많았는데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을 함유하는 게 문화유산이라고 생각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라고 지었는데 북한도 문화유산이라고 표현해 깜짝 놀랐다”며 “북한도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을 모두 포함한다는 의미로 ‘문화유산’이라고 학술지를 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절대 내가 표절한 것은 아니다”고 말하며 관람객들에게 큰 웃음을 줬다.
그는 당시 좋은 글을 위해 해방 이후 북한에서 나온 문화유산 관련 논문을 모두 읽고 가 북측 인사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겨줬다고 한다.
특히 북측 참사들이 남측 인사들을 맞을 때 그들이 ‘고향의 봄’ 같은 남측 노래를 부르며 호감을 갖게 하는 것에 착안, 원활한 북녘답사를 위해 참사들이 놀라도록 북녘의 노래를 배워 불러주기도 했다고.
이는 2005년 6.15공동선언 5주년 행사에 대한민국 정부 대표단 일원으로 방북한 당시 문화재청장은 북측이 주최한 만찬 석상에서 북한노래를 불렀다가 중앙언론의 뭇매를 맞던 일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당시 북한 노래를 부른 것에 대해 정부 대표단이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며 공개 사과를 하기도 했다.
유 교수는 “소 떼 방북으로 금강산 관광이 열리기 직전까지 10여 차례 내금강까지 답사를 하면서 금강산답사기를 준비했다”고 전하면서 “언론에서는 북송에 대한 나쁜 인식이 있어 북송이라고 쓰지 않지만 소들은 돌아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방북이 아니라 북송이 맞다, 가만 보면 언론들이 참 맞지 않는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쓰곤 한다”고 꼬집기도 했다.
1993년 제1권 ‘남도 답사기’를 시작으로 2011년 제6권 ‘인생도처유상수’ 편을 출간한 유 교수는 올해 중으로 제7권 ‘제주도’ 편을 출간하고 이후 제8권인 ‘충청북도·경기도’ 편 등을 준비 중이다. 그러나 북한문화유산답사기에 대한 애정도 드러냈다.
그는 “누가 좀 한번 북한에 데려 갔으면 좋겠다, 함경도의 진흥왕순수비, 삼수갑산지역을 돌아보면 북한편도 한권 더 집필할 수 있을 텐데 아쉽다”고 전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리영희 선생의 부인 윤영자 씨가 유홍준 교수와의 인연을 전하기도 했다.
윤 씨는 “1978년 쯤 이었을 거예요, 한번은 유홍준 교수가 민가협 어머니들을 찾아와 원고료가 생겼다며 당시로는 거금인 10만원을 주고 갔어요, 유 교수는 서울대에 다닐 때 구속돼 민가협 어머니들과 잘 알고 지냈지만 워낙 큰돈이라 몇 년 후 그 돈을 갚지 못해 어쩌냐고 물었더니 ‘자식이 부모에게 준 돈을 어느 부모가 갚나요, 걱정마세요’ 했다, 그때 참 고마웠다”고 말했다. 리영희 선생은 처음으로 유홍준 교수 부부의 주례를 서기도 했다.
또한 백낙청 창비출판사 편집인이자 서울대 명예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책이 300만부가 팔렸다는 것은 우리 사회 스스로 문화적 저력이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며 “이를 축하하고 자축한다”고 말했다.
한편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출간 20여년 만에 300만부 판매를 돌파했다.
출판사 창비는 1993년부터 순차적으로 출간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6권이 이달까지 모두 300만부 넘게 팔려나간 것으로 집계됐다고 지난 12일 밝혔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2000년 제1권만으로 100만부를 돌파하고 2009년 9월 제1∼3권 통합 200쇄(230만부)를 간행하는 등 인문서 최초의 밀리언셀러를 기록하기도 했으며 이번 300만부 돌파도 인문서로는 최초이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이런 판매 기록 외에도 한국 인문서의 새로운 장을 개척하고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과 자긍심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또한 ‘답사기’를 들고 책에 등장하는 문화유산을 찾아 떠나는 전국적인 답사 붐이 일어 현장의 길라잡이 역할을 톡톡히 했으며 우리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여행문화, 놀이문화를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작성일자 : 2012년 03월 29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